산행기

산청 왕산(923.2m). 필봉산(858m) 산행기

단군자손 2013. 3. 26. 19:09

 

산청 왕산(923.2m). 필봉산(858m) 산행기

 

  ○ 일   시 : 2013. 3. 23(토). 08:30 ~ 18:20, 롯데마트 기준

  ○ 회   비 : 25,000원(여순오성산악회)

  ○ 코   스 : 구형왕릉주차장(10:45)-구형왕릉-이정표-류의태약수터-이정표-만경대-전망바위(12:40)  

                   -가짜왕산(906봉)-왕산(13:10)-필봉산-안부-구름다리-전통한방관광휴양지(15:00)

 

   3월부터 주말 산행을 다시 시작하고서 삶의 활력을 되찾은 듯하고 주중에도 산행길을 떠 올리면 

   혼자만의 감미로운 행복에 젖기도 하며 다음 산행이 기다려진다.

   오늘은 경남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왕산과 필봉산 산행으로 가야국의 패망의 전설이 담겨 있고.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의 스승인 류의태 선생이 한약을 달일때 사용했던 샘물이 있는 곳을

   산행하는 날이다. 사전에 가야국에 대한 역사를 찾아 보기도 했고, 류의태 약수터의 물을 

   떠오기 위해 은근한 기쁨으로 물병 2개를 베낭에 넣고서 아파트 울타리에 노란 자태로 눈길을

   사로잡는 개나리꽃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섰다.

 

   산악회를 통한 산행은 경비를 적게 들이면서 산행과 여행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기쁨을 느낀다.

   산악회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혼자 스트래칭을 하는데 산행대장으로부터 버스가 조금 늦어진다는 

   전화가 왔다. 마음이 기쁜데 사정상 늦는다는데 오히려 기다림을 배려해주는 마음이 더 고맙다.

 

   산악회에서 협찬을 받은 노스페이스 차량은 순천과 광양읍을 들러 광양IC에서 남해 고속도로와

   진주분기점에서 통영대전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산청IC로 빠져나와  좌측으로 산청군공설운동장과

   금서면소재지를 지나 왕산과 필봉산으로 둘러 쌓인 전통한방관광휴양단지에 들어섰다.

   오늘 하산 지점이기도한 이곳은 '산청군 동의보감촌'을 조성 중에 있으며, 2013. 9. 6~10. 20까지 

   '산청세계전통의학엑스포'를 개최하기 위하여 건설공사가 한창 진행중에 있었다.

   산행출발지인 구형왕릉 주차장에는 무선롯데마트에서 2시간 10분정도 걸려 도착을 했다. 

 

 

  주) 구형왕릉주차장에서 내리면 구형왕릉 좌측으로 콘크리트로 포장된 임도를 향해 '류의태약수터'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구형왕릉을 지나칠 수 있고 또한 임도 중간에 좌측으로 '만경대, 왕산, 필봉산을

  오르는 이정표가 크게 세워져 있어 '수정궁터와 류의태약수터'를 지나칠 수 있다.

  이번 울 산악회 회원들은 서울에서 내려온 노스케이프 협찬 차량의 바쁜 일정 때문에 심리적으로

  시간에  쫒긴 탓인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정표를 보고서도 왕산과 필봉산이라는 정상에 눈이 팔려 

  모두가 구형왕릉과 류의태약수터를 지나치고 말았다. 나는 되돌아서 겨우 겨우~~~

 

구형왕릉주차장에서 내리면

우측 계곡 경사면의 구형왕릉과

눈이 먼저 마주친다.

그러나 좌측 임도를 향해 류의태

약수터 안내판이 앞서 세워져 있어 

자칫 임도를 따르게 되면 구형왕릉을

둘러 볼 수가 없다. 

 

 

구형왕릉을 보고 나오면 바로 우측

계곡을 따라 송림사이의 등산로를

오르면 임도와 만나게 된다.

 

먼저 구형왕릉으로 향했다.

 

 

 

가야국의 마지막 왕인 무형왕릉이다. 

가야(伽倻)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에 낙동강 하류의 변한 땅에서

여러 작은 나라들이 가야 연맹 왕국을 성립

하여 기원전후부터 서기 6세기 중엽까지

주로 경상남도 대부분과 경상북도 일부

지역을 영유하였다. 6개의 연맹 왕국으로

이루어진 가야는 처음에는 금관가야가,

나중에는 고령의 대가야가 각각 연맹을

이끌어 갔으나 중앙집권체제를 마련한

백제와 신라의 압박을 받아 오다가 결국

532년 신라 법흥왕 때 금관가야가 무너지고

  562년 신라 진흥왕에게 대가야까지 멸망함으로써 가야는 역사속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이 때 신라장군 이사부가 2만의 병력으로 가야를 침공하였으며, 가야의 미륵은 가야금을 들고 신라에

  투항하였고 가야의 문화는 그대로 신라로 흡수되었다. 가야의 인물로는 미륵과 김유신이 있다.

 

  산청 전 구형왕릉(山淸 傳 仇衡王陵)은 가락국(駕洛國, 金官伽倻) 10대 구형왕릉으로 전해지는

  특이한 석조물(石造物)이다. 경사면에 피라밋 모양으로 일곱단을 자연석으로 쌓아 올렸는데,

  전체 높이는 7.1m로 국내 유일한 돌로 쌓은 돌무덤의 왕릉이다.

  구형왕은 구해 또는 양왕이라 하는데 김유신의 증조부로 521년 가야의 왕이 되어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왕으로 있었다고 전해진다.

 

  구형왕릉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일행들은 이미 임도를 따라 가버렸기에 마음이 바빠왔다.

  바로 우측으로 골짜기를 따라 오르는 송림 숲길이 있고 안내판도 있었으나 볼 겨를도 없이 되돌아서

  임도를 따라 일행들을 뒤따랐지만 한참을 보이지 않아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구형왕릉에서 임도를 뛰다시피 하여

10분쯤 걸었을까?

임도 좌측으로 큼직한 이정표가 있고

옆에는 동의보감둘레길 종합안내판이

색이 바랜 채 세워져 있다.

 

임도 직진 방향은 동의보감 둘레길이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유의태약수터

0.9km, 좌측 산등성을 오르는 방향은

망경대,왕산,필봉산이고 임도 아래

우측으로는 구형왕릉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임도 아래를 보니 구형왕릉에서 곧바로

오르는 송림 숲길이 이곳에서 만나는

지점이었다. 그런데 우리 일행들 모두는

콘크리트로 포장된 임도를 따라 따가운

봄볕에 얼굴을 내밀면서 돌아왔던

것이다.  

모두가 마음이 바쁜 탓이었을까, 

이정표의 동의보감둘레길 큰 글씨만

보고 유의태약수터 작은 글씨는

외면을 한 채, 망경대, 왕산을 향해

등선을 따라 올랐다.

이렇게 두 번이나 독도에 대한

실수를 저지른지도 모르고......    

 

 

 

 

  울창한 송림의 솔향기가 온 몸의 세포를 자극하는 느낌을 받으며 돌밭길을 오를 때는 생동감이 넘치고

  흙살길을 오를 때는 잔잔한 고요가 스며드는 것 같다. 잘못 들어선 길인지도 모르고

  우리는 열심히 유의태약스터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임도에서 6분쯤 오르니 넓다란 산 능선의 등마루가 나오기에 이제부터 능선으로 이어지겠구나! 했다

 

  그런데 능선길은 잠시 이고 ,왕산으로 오르는 능선을 비켜서면서 산중턱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며

  소나무 사이사이로 샛길 같은 좁은 길이 이어진다. 송림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10분쯤 

  걷다보니 다시 능선이 나타나고 갈림길에 이정표가 서 있다..

이게 뭡니까, 이다.

유의태약수터가 나오기를 바라면서...

약수물을 담아가서 가족들과 건강을

기원하며 야수를 마실상상도 했는데....

임도 이정표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왕능방향이 올라온 곳이고 진행방향은

왕산이며, 유의태약수터(0.9km)는 우측

방향으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 

누구를 원망하랴...

시간을 보니 11:25분이다.

준비해 온 물병에는 약수를 

담아가야 한다. 평상시 운동할 때 평지에서 1.1km를  10분에 걸었다. 왕복 30~40분이면 되겠다는 판단에 류의태약수터를 향했다.

 

다행이도 왕산과 필봉산을 감싸도는

동의보감 둘레길이라 비탈지지 않았다.

약수터를 100m정도 앞두고

갑자기 내리막길이 길게 이어지기에

누군가 이정표를 돌려 놓은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지체할 수도

없었다. 이때는 무대뽀다.

갈 데까지 가보자.

80m정도 직선으로 내려가니 다시 길은 

수평으로 이어지며 가까이에 유의태

약수터가 눈에 들어왔다.

 

 

 

 

 

잃어버린 사람을 만난 듯 반갑고

살았구나 하는 반가움이 가슴을

찡하게 울리며 약수물이 가슴을 적시며

흘러 내리듯, 한 순간의 긴장이 약수물에 

희석되어 녹아 내리고 있었다.

 

물병 두 개에 약수물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더해 정성으르 담았다.

다시 이정표에 도착한 시간은 11:57분,
왕복 32분이 걸렸다.

 

류의태약수터는 류의태 자신이 고치지 못하는 불치의 난치병도 '千蚓水(천인수)' (萬蚓水 라고도 함)

를  먹어 고쳤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신의 유의태의 가르침속에 무릇 물에는

  서른세가지 종류가 있고 그 약효가 달라 의원은 약효를 내는데 물을 가려써야 한다며

  물중에 정화수(井華水)에 이어 두번째로는 여름에 차고 겨울에 온(溫)한 '한천수(寒天水)로

  장복하면 반위(反胃:위암)를 다스린다는 물로 왕산의 약수가 이에 해당한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눈이 내린 한겨울에도 왕산의 약수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맛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다.

  류의태 선생 활동시 한약제조에 사용되었던 샘터(일명:약수터)의 약수는 돌너덜 아래 자리잡은

  서출동류수(西出東流水)로 위장병과 피부병 등 불치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부터는 평원처럼 느껴지는 푹신한 흙산길 능선이며 울창한 송림은 계속되었다.

  갈림길에서 7분을 오르니 큰 바위가 능선길을 막아서고 있는데 이 바위가 만경대이다.

 

바위를 좌측으로 돌아서서 오르면 

평범한 것 같지만 ,

만경대는 고려 공민왕 때 예의판서를

지낸 두문동 72인의 한 사람인

농은(農隱) 민안부(閔安富)가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반대해 지리산

기슭인 산청군 생초면 대포리에서

은둔해 살면서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이곳 왕산 중턱 바위에 올라 송경(고려의

수도)을 향해 절을 하며 고려를 그리워

했던 충절이 서려 있는 곳이다.

※ 두문동은 조선 건국을 반대해 벼슬을

거부한 고려 유신들이 은거했던 마을이

 

 

 

 

  구형왕릉에서부터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울창한 송림은 만경대를 지나 지금의 동의보감촌과 왕산으로

  오르는 갈림길까지 이어지며 흙살이 좋고 능선이 넓고 포근하여 아무리 걸어도 지칠줄 모른다.

  상쾌하고 맑은 솔향의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시간과 자연과 평화를 즐기며 무한한 자유를 느끼며 걸었다.

 

 

사람도 만나면 헤어짐이 있듯이

1시간 30분 정도를 함께 했던 울창한

소나무 숲과 헤어지고 나니

좌측으로 한방휴양지와 필봉산 방향의

이정표가 서 있고 잡목들이 맞이한다.

흙살로 푹신하고 완만했던 오름길이

비탈로 변하고 얼었던 땅이 녹아

앞서간 발자국으로 반죽이 되어 있는

질퍽한 흙살을 비켜 딛으며

15분쯤 올라 왕산과 수평 능선으로

이어지는 전망바위에 도착했다.

앞서간 일행들을 만나고 바위 위에 앉아

경호강을 내려다 보며 주먹밥을 먹었다.

 

 

 

  겹겹이 이어지는 능선과 산맥들이 사방으로 펼쳐져 있어 산속에 산, 산들의 놀이에 끼여든 듯하고,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경호강 물줄기는 인생 여정을, 인생의 굴곡을 보는 듯 했다.(상촌리, 하촌리 일대) 

 

  경호강 주변으로부터 갈전리, 대포리, 특리 일대이고, 바로 아래로는 전통한방관광휴양지이다.

  산청 '동의보감촌'으로 조성 중에 있고, 2013. 9. 6~10. 20까지 '산청세계전통의학엑스포'를 개최

  한다는데 그때 가족들이랑 주말에나 와 볼 수 있을까? 취미란 보고 느끼면서 이렇게 우러나는 걸까?

 

  전망바위에서 바라 본 전경으로 우측 푸른 부분이 가짜 왕산, 바로 뒤로 평평하게 보이는 봉이 왕산이고,

  좌측으로 필봉산까지의 능선이며 여우재 그리고 뽀쪽한 봉우리가 붓끝을 연상하게 한다 해서 필봉,

  문필봉이라 하기도 하고, 여인의 가슴을 연상해 유방봉, 유두봉이라고 불리는 필봉산이다.

 

  이곳 전망바위에서 부터 왕산까지의 능선은 수평으로 이어지고 평원과 같아 능선이 아닌 평지와 같다.

  전망바위에서 7분쯤 거리에 좌측으로 작은 바위 위에 왕산 923m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데

  이를 두고 가짜왕산으로 부르고 있다. 이곳에서 바라 본 필봉산은 붓끝을 연상하게 한다. 

 

  가짜왕산을 조금 지나면 큰 소나무 두그루가 그늘을 만들고 주변은 쉼터 공간이지만 그냥 지나고...

 

  두 그루의 큰 소나무를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 이정표에 우측 아래로 평전샘, 추모공원가는 길로

  표기되어 있으나  평전(능선) 아래에 샘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유의태약수터로 내려가는 길이다.

  왕산을 향하면서 나와 왕산, 지리산 천왕봉이 일직선으로 보이는 지점에서 걸음을 멈추고 

  지리산 청왕봉에서 왕산으로 이어지는 산맥들 그리고 천왕봉 부근에 눈이 녹아 얼음이 된 채 희미하게

  반짝이는 아름다움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지만 아쉽게도 얼음은 휴대폰속에서 다시 녹아버린 것 같다.

 

왕산 923.2m 표지석이다. 조망은 거의 비슷하여 표지석 인증샷

 

왕산에서 조금 내려와 바라 본 필봉산이다. 붓끝보다는 여인의 가슴을 연상케 한다.

 

  바라보는 사람이 아닌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붓끝이나 여인의 가슴을 연상케 한다는 필봉산(필봉, 문필봉,

  유방봉, 유두봉)에 올랐다. 이곳에서 마시는 물은 먹물일까 우유일까~~~

 

산악회 일행

 

전망바위에서 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모습, 듬직하고 포근하여 코기리 등이 연상된다.

 

왕산에서 필봉산으로 내려오는 능선

 

필봉산 아래 전망바위에서 동의보감촌(전통한방 관광휴양단지)을 바라 본 전경

 

  통영대전중부고속도로가 경호강과 나란히 어울려 있고 산청군 소재지가 경호강 건너에 위치하고 있다.

  경호강 이름은 '거울 같이 맑은 강'이라는 뜻으로 산청군 어서리 강정에서 진주 진양호까지 80여 리의

  물길을 이르며 수상레저인 래프팅의 명소로 유명하다고 한다.  

 

하늘과 산능선과 하늘금,  산줄기와 골짜기와 산간마을,

무디고 무딘 것 같은 산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이다. 

 

필봉산에서 능선을 타고 내려오다가 깊숙한 안부에서 이정표의 강구폭포 방향을 따라

좌측으로 내려서면 가파르기는 하지만 푹신한 흙길이 계곡을 따라서 이어진다. 

 

안부 갈림길에서 계곡을 따라 45분정도 내려와 구름다리에 도착을 끝으로 산행을 마쳤다. 

 

 

산악회에서 저녁 식사를 제공한다기에 동의보감촌 식당가 주차장으로 이동을 했다.

 

동의보감촌에 조성된 한방테마공원 입구에서

 

한방테마공원 도로 건너편에서 아쉬워서 한컷 더!

좌측에서부터 필봉산, 필봉산↔왕산 능선, 왕산, 가짜왕산, 전망바위.

그리고 식당으로~~~

 

 

   동의보감촌 식당가에서

   1인분에 15,000원하는  산약초버섯샤브샤브로 이른 저녁을 즐겼다.

   노스케이프에서 차량 협찬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회비 25,000원 내고

   역사의 유적지를 둘러보며 왕산과 필봉산을 오른 것 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한데

   산청군의 별미인 건강식 저녁까지 푸짐하게...

   즐거운 여행, 줄거운 산행, 즐거운 식사~~~삼즐의 하루가 아닌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