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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효종대왕릉 관람(2016.04.23)

단군자손 2016. 4. 25. 11:38

여주 효종대왕릉 관람


세종대왕릉을 관람하고 여주여행 마지막 코스인 효종대왕릉으로 이동했다. 세종대왕릉에서 효종대왕릉까지는 걸어서도 오고갈 수 있다. 관람시간 및 관람요금은 세종대왕릉하고 동일하며 어느 한 곳에서 요금을 지불하면 두 곳을 다 관람할 수 있다. 단 관람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영릉(寧陵, 사적 제195호) 안내도


영릉(寧陵)은 효종대왕(1619~1659)과 인선왕후(1618~1674)의 쌍릉이고,  영릉(英陵)은 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동봉이실합장릉이다. 효종은 인조(仁祖)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소현세자가 돌아가신 1645년 왕세자(王世子)로 책봉되었다. 이후 1649년 조선조 제17대 왕으로 즉위하여 1659년까지 10년간 나라를 다스리다가 41세의 아니로 승하하였다.


효종은 병자호란 후 소현세자와 함께 불모로 청나라 심양에서 8년간 고초를 겪었는데, 당시 조선 왕조가 당한 굴욕을 씻을 수 없는 민족의 한으로 생각했다. 왕위에 오른 후 효종은 이 수치를 씻고자 청나라 정벌을 계획하여 대내적으로 대동법(大同法)을 실시하고 화폐를 널리 보급하여 나라의 기틀을 다졌으며, 대외적으로 북벌 계획을 위하여 성채(城砦)를 쌓는 등 국방력을 강화하였다.


이즈음 러시아가 시베리아 쪽으로 남진하자 청나라는 조선에 원병을 청하였다. 이에 왕은 우리 군대의 능력을 시험하고 청나라의 군사 정세를 탐지하고자 두 차례에 걸쳐 나선정벌(羅禪征伐) 원정군을 보내어 쑹화강, 헤이롱강에서 러시아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그러나 북벌계획을 실천에 옮기기도 전에 갑자기 승하하여 그 뜻을 펴지 못했다.


영릉은 원래 경기도 양주(지금의 구리시)의 건원릉(健元陵) 서쪽에 있었던 것을 현종(顯宗) 14년(1673)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효종대왕릉 주차장 및 매표소 전경


매표소에서 효종대왕릉으로 가는 길


재실(齋室) 전경



재실 내에 있는 회양목(천연기념물 제459호)



재실 내부 전경


재실 출입문(위쪽)


재실문을 지나 홍살문으로 가는 길


홍살문과 배위


세종대왕릉에서는 금천교가 홍살문 이전에 설치되었지만 효종대왕릉은 홍살문과 정자각 중간에 설치되어 있다.



참도(參道)로 신도(神道)와 어도(御道, 좌측)이다.


좌측 수라간, 중앙은 정자각, 우측 앞은 수복방, 우측 뒤에는 비각이다.


비각(뒤)과 수복방



정자각, 비각, 수복방


정자각, 영를(寧陵),  비각


정자각 전경


제사 지내는 곳


세종대왕릉은 무릎을 꿇어야 능이 보였지만 효종대왕릉은 일어서 있어도 능이 보인다.



예감 : 제사를 지낸 후 축문을 태우는 돌함


영릉비(寧陵碑)



효종대왕릉


효종대왕릉에서 본 인선왕후릉


효종대왕릉도 세종대왕릉처럼 풍수지리상 좌청룡우백호인데, 세종대왕릉의 좌청룡이 효종대왕릉에서는 우백호이다.


인선왕후릉


효종대왕릉 매표소 주변 정비공사 중인 장면


효종대왕릉을 끝으로 1박 2일간의 여주 여행을 13:50경 마쳤다. 대전 처형댁으로 귀가하면서 고속도로를 진입하기 전에 맛국수로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도로변에 식당이 보이지 않아서 끝내는 영동고속도로 서여주IC로 진입하게 되었고, 하는 수없이 서여주휴게소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이번 여주 여행기간 중에 식사는 여주의 별미인 쌀밥정식, 쏘가리탕, 맛국수 세 가지를 먹으려 했는데, 여행지로 이동하는 도로변이나 콘도 주변에서 식당을 찾지 못해 아무것도 먹지 못한... 먹거리에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