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세종대왕릉 관람
2016년 4월 22일부터 1박 2일간의 여주 여행 2일째, 여주 일성남한강콘도를 나와 신륵사관광지, 강천섬, 강천보를 둘러보고, 강천보에서 세종대왕릉으로 왔다. 세종대왕릉과 바로 옆에 있는 효종대왕릉을 보면 여주 여행은 끝난다.
관람 소요 시간은 10:55~13:15까지 2시간 20분 정도 소요되었는데, 이는 세종대왕릉의 해설사 안내를 받아 관람하는 팀에 끼어 함께 관람하였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의 업적에 대해서는 어는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1만원권 지폐에 대한 무관심했던 내용들을 알 수 있었고, 세종대왕릉을 통해 조성 왕릉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세종대왕릉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이다. 관람 시간은 봄/가을(2~5월, 9~10월)은 09:00~18:00 이고, 여름(6~8월)은 09:00~18:30 이며, 겨울(11월~1월)은 09:00~17:30 이다. 매표는 관람 종료시간 1시간 전에 마감한다. 관람요금은 일반 성인기준 개인 500원이고, 단체(10인 이상)는 400원이며, 효종대왕릉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조선 왕릉 주요 상설도(象設圖)
조선 왕릉은 진입공간, 제향공간, 능침공간으로 구분된다.
각 명칭에 대한 해설
세종대왕릉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본 세종대왕릉 정문 및 유적지관리사무소 방향
세종대왕릉유적지관리사무소
세종대왕릉 및 효종대왕릉 배치도(사적 제195호)
세종대왕릉은 영릉(英陵)으로 세종대왕(世宗大王, 1397~1450년)과 그의 부인인 소헌왕후(昭憲王后, 1395!1446년)를 합장한 무덤(陵)이다. 세종대왕은 조선조 제4대왕으로 1418년 왕위에 올라 1450년 재위(在位) 32년 춘추 54세에 승하(昇遐)하였다. 세종대왕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聖君)으로 한글(훈민정음 :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록)을 창제하고 측우기(測雨器), 혼천의(渾天儀), 해시계 등 과학기구를 발명하고 제작하였다.
세종대왕릉 정문
아악(雅樂)을 정립하고 북방의 야인(野人)을 정벌하고 4군(四郡)과 6진(六鎭)을 개설하여 우리나라의 국경선을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확정하였으며, 일본 대마도(쓰시마)를 정벌하여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학문을 숭상하여 학자를 기르고 활자(活字)를 개량하여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 부처의 공덕을 칭송한 노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 조선의 창업을 찬양한 노래), 농사직설(農事直設 : 농업기술을 모은 책),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 윤리덕행을 찬양한 책), 팔도지리지(八道地理誌 : 한국의 지리책), 석보상절(釋譜詳節 : 석가의 일대기), 의방유취(醫方類聚 : 의학백과사전) 등 수많은 책을 발간하였다. 또한, 농업을 장려하고 백성을 사랑하였으며, 어진 성덕(聖德)이 하늘같이 높았다.
관람권 확인하는 곳
영릉은 원래 서울 헌릉 서쪽에 있었던 것을 예종 1년(1469)에 여주로 옮겨왔다.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을 길이 숭모하고 그 위업을 오늘에 이어 받아 민족문화 창조의 기틀로 삼고자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세종전을 새로 짓고 경역(境域)을 정비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간의(簡儀)와 세종전
간의(簡儀)
정남일구(正南日晷)
규포(圭表). 뒤에는 혼천의
혼천의(渾天儀)
적도의(赤道儀) 및 관천대(觀天臺)
세종전에서
세종전에서
자격루(自擊漏)
측우기(測雨器)
수표(水標)
재실(齋室). 재실에서 홍살문까지가 세대왕릉 진입공간이다.
훈민문
훈민문을 통과하여 본 세종대왕릉 방향
연못
금천교(禁川橋)
재실에서 이곳 금천교까지는 진입공간이고, 보이는 홍살문에서 능 아래 정자각. 비각까지는 제향공간이다.
홍살문(紅箭門)과 배위(拜位, 홍살문 우측 사각형 자리)
홍살문, 배위(판위), 참도에 대한 설명
홍살문 우측으로 사각형 자리가 있는데 이를 배위(拜位)라 하는데, 안내판에는 판위(板位)로 설명하였다. 배위는 홍살문 옆에 있으며, 왕이나 제관이 이곳에서 먼저 능을 향해 절을 올리면서 '참배하려 왔음'을 알리는 곳이다.
참도(參道)
참도는 중앙 신도(神道)와 우측의 어도(御道)로 되어 있다. 세종대왕릉에는 좌측에 길(道)이 하나 더 있다.
수복방(守僕房)
정자각(丁字閣)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정(丁)'자 모양이라 하여 정자각이다. 정자각을 오르내릴 때는 '동서입출(東西入出)'의 원칙을 지켜야한다. 동쪽(정자각 우측) 계단으로 오르고 서쪽 계단(정자각 좌측)으로 내려와야 한다. 정자각을 오르는 계단을 신계와 동계라 하는데, 조선 왕릉과 특이한 것은 참도(參道)의 어도처럼 동계가 신계 좌우로 두 개 설치되어 있다.
수라간은 정자각 좌측 건물이다.
좌측에서 본 영릉(英陵)과 정자각
정자각 제사지내는 곳
제사를 지내면서 일어서 있으면 세종대왕릉이 보이지 않지만 무릎을 꿇으면 뒷문을 통해 능(陵)이 보인다. 효대종대왕릉은 무릎을 꿇거나 일어서 있어도 뒷문을 통해 능이 보인다.
제수진설도 정자각 뒤에는 예감과 산신석이 있다. 사진은 찍지 않았는데 효종대왕릉에서는 예감을 찍었다.
예감은 제사를 지낸 후에 축문을 태우는 돌함으로 ‘망료위’라고도 하며 정자각 뒤 왼쪽에 있고, 산신석은 시신을 모신 후에 3년 동안 토지를 관장하는 신(神)인 후토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 주로 정자각의 오른쪽 위, 예감과 마주 보는 곳에 설치해 있다. 영릉비(英陵碑)로 총탄 자욱이 선명하게 있다. 세종대왕릉의 능침공간 능침공간 이해도 ◆ 능침(능상) : 능의 주인공(세종대왕, 소현왕후)이 묻혀 있는 곳. ◆ 병풍석 : 능의 주위를 병풍처럼 빙 둘러서 무덤을 보호하는 것으로 12방위를 나타내는 십이지신상이 해당 방위에 맞게 새겨져 있어 잡귀들이 무덤 안에 들어올 수 없게 한다. ‘둘레돌’, ‘호석’이라고도 한다. ◆ 석양·석호 - 돌로 만든 양과 호랑이로 온순함을 상징하는 양과 사나움을 나타내는 호랑이를 무덤 양쪽에 두 기씩 번갈아 설치하여 음양의 조화를 이룸과 동시에 악귀들의 접근을 막는다. ◆ 망주석 - 무덤 앞쪽 좌우에 세워져 있는 기둥으로 영혼이 무덤을 찾는 표지로 세웠다고 하기도 하고, 음양의 조화나 풍수적 기능 때문에 세웠다고 한다. ◆ 혼유석 - 일반인의 무덤에서는 제물을 올려놓는 곳으로 ‘상석’이라한다. 하지만 왕릉은 정자각에서 제사를 지내기에 이곳은 ‘혼령이 앉아 쉬는 곳’이란 의미에서 ‘혼유석’이라하며, 유(遊)가 ‘놀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 장명등 - 왕릉의 영원함을 기원하는 등이다. ◆ 문인석·무인석 - 왕의 무덤이니 당연히 신하들이 있어야 한다. 문인은 문신 관리를 상징하는 표식인 ‘홀’을 손에 쥐고 있고, 무인은 긴 칼을 지팡이처럼 잡고 있다. ◆ 석마 - 문인석이나 무인석의 뒤나 옆에는 말이 서 있다. 중국 왕릉에는 없는 조선 왕릉 고유의 형식이라고... 세종대왕릉에서 바라본 조망 풍수지리에 문외한이라도 좌청룡 우백호(左靑龍 右白虎)임을 알 수 있고, 건너에는 높은 산(황학산인 듯)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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